2020. 2. 23. 12:50

1850 미국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인데, 중반부에 들어서니 주인공 여자가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면서 주눅이 든 채 미래의 시어머니와 혼수 이야기를 나누는(? 듣는) 장면이 꽤 흥미롭다. 그러니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영국의 본가에 가족을 두고 어쩌다 보니 홀로 미국에 오게 되었는데, 급작스레 결혼을 하려고 하다보니 이곳 풍습은 혼수로 이불 12채를 가져가야 한단다. 그녀는 먼 길을 오는 바람에 집에서 이불을 한 채 가져왔고, 지금부터 11채를 만드는 것은 3년이 걸려도 어려운 일. 뭐 이런 걸 가져와야한다고 윽박지르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쯤, 소설은 주인공이 얼마나 괴로운 상황에 놓였는지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을 꽤 자세히 묘사한다. 나는 전혀 설득이 안되는 동시에 그녀의 심정이 너무도 와 닿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대가 다르므로.. 지금의 내 눈에 우스워보이는 그놈의 ‘이불’일 뿐이지만, 당시의 시점에서 그녀에겐, 그리고 미래의 시어머니에게는 그놈의 ‘이불’이 절대적인 것. 소설을 읽는 나는 마음 속으로 계속 ’그냥 결혼을 관둬버려. 혼자 살아도 돼.’, ’이불 일단 결혼하고 살면서 50채 만들어준다고 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한 숨 돌리고 보니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 역시 조금 지나면 별 일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사실 손에 아무 일도 잡히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책을 펼치긴 했지만, 글이 잘 읽히지도 않을 뿐더러.. 내가 지금 책을 읽을 상황인가..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 이 답답한 마음은 내가 풀지 못하고 있는 어떤 걱정거리 때문인데, 이놈의 걱정 역시 그놈의 ‘이불’일 것이므로. 그저 시간이 지나가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애끓고 속끓여 화병나는 것 보다 나은 일 아닌가 싶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성격 자체가 매우 집요한 면이 있어서 이게 쉬이 누그러지지 않는 다는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하다만..

다시 다음 페이지나 읽어보아야겠다. 그래서, 이불을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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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llever